한의학은 엄청나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서양의학의 군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그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발전하는 서양의학이 한의학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의학의 오랜 경험을 입증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수천 년을 갈고닦아온 한의학의 경험이 서양의학에서는 비과학적인 경험의 나열로만 여겨졌으나, 최근 서양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오히려 한의학에 잠재되어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인정하고 검증해 내게 된 것이다.
음양과 오행은 상대적이다
그러면 마치 감추어진 보물처럼 모습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것 같은 한의학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걸까? 한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한의학이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분명히 한의학은 동양철학의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양철학은 시내 곳곳에 붙어 있는 사주 ․ 관상이나 역점과는 매우 거리가 먼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 유교와도 거리가 멀다. 한의학을 하려면 사서삼경을 꼭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얕은 사고의 표현일 뿐이다. 그러한 경전들은 그저 한문 공부하는 데에 도움을 줄 뿐, 한의학을 공부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하다. 마치 영문 의학원서를 공부하기 위해서 영문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영어 공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의학의 사상적 배경은 도가(道家)이다
한의학의 사상적 배경은 조셉 니담(Joseph Meedham)이 말했듯이, 명확하게 도가(道家)이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 아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활용된 것은 바로 음양론(陰陽論)과 오행론(五行論)이다.
대학시절, 양방 병리학 교재의 첫머리에 ‘건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인(다이내믹한) 평행상태’라는 정의가 쓰여 있다. 인체의 건강에 대한 견해가 동서양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양의학의 경우는 그러한 생각을 실제에 전면적으로 적용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아마 그 이유는 불변하는 것만이 진리이며 그를 연구하는 학문이 과학이라고 인정되었던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불변하는 것은 절대적인 성격을 지니는 데 반하여, 평형상태를 말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스템 안에서의 상대적인 틀을 설정해야 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의학이 원론적으로는 평형상태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 임상검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표는 모두 정량화(定量化)되고 가시화된 절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평형을 말하기 위해 필요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평형상태를 말하는 데에 가장 적절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음양은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음양이라는 개념은 최초로 햇빛이 비치는 언덕으로부터 기원했다고 한다. 해가 비치는 언덕은 밝고 따뜻하다. 그에 비해 그 반대쪽의 그늘진 언덕은 어둡고 춥다. 이처럼 소박한 관찰로부터 주변의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상대적인 관점에서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음양과 오행은 상대적(相對的)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해는 양, 달은 음, 남자는 양, 여자는 음, 하늘은 양, 땅은 음, 불은 양, 물은 음, 낮은 양, 밤은 음 등의 다양한 적용과 판단이 생겨났다. 그래서 음은 내려가고 내부지향적이며 상대적으로 정적(靜的)인 반면, 양은 올라가고 바깥으로 향하는 성질이 강하며 동적(動的)인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추상화되었다. 이러한 음양 개념은 점차 정리되면서 다음의 몇 가지 내용으로 요약되었다.
첫째, 모든 자연의 사물들을 비교하여 음양으로 분류하고, 또 하나의 사물이라 할지라도 다시 음양의 두 가지 대립적인 속성으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음양 개념은 점차 정리되면서 다음의 몇 가지 내용으로 요약되었다.
첫째,
모든 자연의 사물들을 비교하여 음양으로 분류하고, 또 하나의 사물이라 할지라도 다시 음양의 두 가지 대립적인 속성으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음양은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그를 바라보는 기준만 바뀌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둘째,
음양 사이는 상호 의존적이면서 상호 간에 발생의 근원이 된다.
셋째,
음양은 서로 견제하는 과계에 있다. 마치 시소처럼 한쪽이 약해지면 다른 쪽이 상대적으로 강해지거나, 한쪽이 강해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한쪽이 기울어지는 것이다.
넷째,
음양은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음은 양으로 양은 음으로, 서로 상대편의 속성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상황에 따라 개별 혹은 동시적으로 적절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다시 한의학적으로 적용되면서 더욱 구체성을 가지게 된다.
우선 인체구조의 설명에 있어서, 상부 체표(上部 體表), 등(등), 육부(六腑 ; 쓸개, 위, 대장, 소장, 방광, 삼초)는 양에, 하부 체내(下部 體內), 배, 오장(五臟 ; 간, 심, 비, 폐, 신)은 음에 속하는 등 더 나아가 인체의 생리, 병리, 진단, 치료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음양론은 다음에 소개할 오행론에 비해 다소 보편적인 성격을 가진다. 왜냐하면 반드시 음양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엠페도클레스의 4원 소설이라든지 히포크라테스의 4 액체설 등 서양에서 짝수로 이해되었던 모든 생각들은 모두 음양으로 수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아무튼 어떠한 시스템의 균형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에는 대개 상대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음양론에 다름없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4 원소(공기, 땅, 물, 불)
거기에 비해서 5라는 숫자를 제시한 오행론은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좀 독특한 방법론이다. 한 때 오행을 영어로 ‘다섯 가지 요소(Five Elements)’라고 번역하였지만, 지금 ‘다섯 가지 국면(Five Phases)’이라고 번역한다. 즉 오행의 ‘행(行)’이 어떤 실체를 가진 요소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오행도 처음에는 삶의 기본적인 요소이자 실체인 육부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 후 『상서 홍범구주』에서 지금처럼 추상화된 개념으로 승격되었다. 물론 그러한 추상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소 애매모호한 개념이 되고 말았지만, 만약 그때에 그와 같은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엠페도클레스가 제시했던 4 원소(공기, 땅, 물, 불) 설과 비슷한 운명을 겪으면서 박물관에 소장된 박제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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