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100살 이상의 고령자 수를 헤아려 보면, 여자가 남자의 9배에 달한다. 사망률도 여자가 남자보다 모든 연령층에서 낮게 나타난다. 이 같은 명제는 출생 이전에도 타당하다. 연구에 의하면,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임신되는 아이의 성별은 여아 100명에 남아 약 115명이다. 하지만 실제로 태어나는 아이는 여아 100명에 남아 약 104명이다. 낙태, 사산, 유산 등으로 태어나지 못하는 태아의 비율이 남아가 여아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사망률도 남아가 여아보다 높다. 거의 모든 연령에서 남자의 사망률이 여자의 사망률을 웃돌기 때문에 약 25세가 되면 여자의 수가 남자의 수를 능가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
그럼, 저연령 층에서 남자의 사망률이 여자의 사망률보다 높은 까닭은 무엇인가? 여자가 남자보다 더 늙어서 죽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들에 대해 확정적인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답변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에는 사회적 심리적 요인들이 작용할 것이고, 의료 기술의 효과가 남성과 여성에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생물학적 차이와 행동적 차이도 중요하다. 특히, 과학자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이유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남성이 오래 사는 것보다 여성이 오래 사는 것이 종의 진화를 위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장수는 자연의 선택
인간 이외에 다른 동물들도 암컷과 수컷의 평균 수명이 다르다. 우리가 야생에서 관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동물들은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 산다. 예를 들어, 짧은 꼬리원숭이 암컷은 수컷보다 평균 8살 정도 오래 살고, 향유고래 암컷은 수컷보다 무려 30년이나 더 산다.
종의 수명은 새끼가 어미에 의존하는 기간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새끼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요구되는 시간이 길면 그 종의 수명도 길어야 한다. 특히 암컷의 수명이 길어야 한다. 이것은 종의 진화를 위해 선택된 것이다.
암컷이 더 오래 살고 더 천천히 늙을수록 암컷은 더 많은 새끼를 생산하고 새끼가 어른이 되도록 키울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장수하는 암컷은 단명한 암컷보다 자연에 의해 선택될 수 있는 이점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장수하는 수컷도 단명한 수컷에 비해 진화적 이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수컷의 번식 능력은 수명보다는 암컷에 접근하는 빈도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그러므로 수컷에게 있어서 수명은 암컷에서처럼 그렇게 중요한 진화의 요인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종의 역사를 들여다 보아도,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한 남자의 자손의 생존은 그 남자가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어미가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달려 있었다.
여성에게 폐경기가 있다는 사실은 여성의 장수 이유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와 배치되는 듯하다. 폐경기가 있음으로 해서 여성이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폐경기는 노령 출산의 높은 출산 중 사망위험을 방지함으로써 여성의 수명을 길게 한다. 오늘날에도 40대 여성의 출산 중 사망률은 20대 여성에 비해 4~5배 정도 높다. 그러므로 여성의 폐경기 역시 자연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폐경기가 진화론적 적응의 결과라는 주장을 맨 처음 제기한 것은 1957년 조지 윌리암스 교수이다. 최근에는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이런 주장이 뒷받침되고 있다. 연구에 의하면, 100살 이상 고령 여성들 가운데 상당수가 40대에 출산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살 이상 고령자들은 같은 해에 태어난 다른 여성들보다 40대 출산 확률이 4배 정도 높았다.
이것은 여성의 생식력과 수명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중년에 아이를 갖는 것이 여성의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는 뜻은 아니다. 이 연구는 여성이 보다 나이가 들어서 임신하게 만드는 요인이 이런 여성들이 장수할 수 있는 기회를 향상해 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성 호르몬의 차이가 수명을 결정한다
여성의 장수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이를 뒷받침하는 생리학적 매커니즘들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성 호르몬이다. 성 호르몬은 남성과 여성의 사망 패턴에서 보이는 성차를 설명해 주는 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연령층에서 남자의 사망률이 여자의 사망률보다 높지만, 특정 연령에서부터 사망률의 성차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기는 사춘기가 시작할 때이다. 미국의 경우는, 이른바 청소년기라고 할 수 있는 15살에서 24살 사이에 남자의 사망률이 여자의 사망률보다 3배 이상 높고, 그 원인도 무모한 행동이나 폭력이 가장 많다. 구체적으론 자동차 사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살인, 자살, 암, 익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특정 시기에 남성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은 다른 영장류에서도 관찰된다.
무모한 행동이나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은 중년 이후가 되면 급격히 줄어든다. 물론, 그 후에도 계속 이런 원인으로 인한 사망률은 남자가 여자보다 2배가량 높다.
중년 이후 남성에게서는 흡연 및 음주 관련된 질병이 여성에 비해 두드러진 사망원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사망률에서 성차를 나타내는 가장 큰 요인은 심장질환이다. 남성들은 40대부터 심장질환의 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 반면, 여성의 경우는 폐경기 이후까지는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크지 않다.
청소년기에 남성 사망률이 급증하는 것은 그 때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성적 충동은 물론 공격성과 경쟁심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스토스테론의 급격한 증가는 남성들을 공격적이게 만들고 무모한 행동 성향을 증가시킨다. 청소년기에 급격히 증가하는 남성 사망률을 과학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의 급격한 증가로 설명한다.
생리와 느린 신진대사가 장수의 비결
중년 이후의 남성에게 있어서 테스토스테론은 행동적 측면에서는 물론 생물학적 위험도 증가시킨다. 테스토스테론은 악성 콜레스테롤인 LDL의 혈중 농도를 증가시키고 양성 콜레스테롤인 HDL의 혈중 농도를 감소시킴으로써 중년 이후 남성의 심장 질환 및 심장 발작의 위험을 크게 한다.
반면,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활성산소기(oxygen radicals)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함으로써 여성의 노화를 억제하고 질병을 방지한다.
활성산소기는 전자를 하나 더 가지고 있어서 반응성이 강한 산소로서 신경 및 혈관 손상을 유발하고 노화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폐경기 이후의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면 심장 질환 및 심장발작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에스트로겐 요법은 일반적인 사망 요인들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연구 결과는 에스트로겐 요법이 알츠하이머 병의 발병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아직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여성의 생리 또한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폐경기 이전의 여성은 한 달에 한 번씩 자궁 내부에서 출혈이 생김으로 해서 남성보다 체내 혈액량이 20% 정도 적다. 이에 따라 체내의 철 이온 함량도 남성보다 낮다. 철 이온은 활성산소기의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철 이온 함량이 낮으면 그만큼 노화 속도가 떨어지고, 심장혈관성 질환과 그밖에 활성산소기가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노화에 관련된 질병이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
의과대학에서 실시된 연구들은 이 이론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빈번하게 헌혈을 하는 남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체내에서 LDL 콜레스테롤이 산화되는 비율이 헌혈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낮게 나타났다. LDL 콜레스테롤의 산화는 동맥경화증과 심장질환의 발전 단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신진대사가 느린 것 또한 여성의 장수와 연관이 있다. 느린 신진대사는 여성이 비만증에 걸리기 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신진대사와 수명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이 관계는 동물 실험으로 쉽게 입증되었다. 먹이의 양을 줄이면 신진대사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생각에 착안해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쪽은 먹이를 자유롭게 먹게 하고 다른 한 쪽은 똑같은 먹이를 30% 줄여서 주었더니, 적게 먹은 원숭이들보다 늙는 속도가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는 실험 보고가 있다.
분명한 이유는 모르지만 남성이 여성보다 신진대사가 빠르게 일어난다. 수정란 상태의 태아를 보면, 남아일 때가 여아일 때보다 빠르게 분할된다. 남성의 신진대사 속도가 보다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남성의 세포들이 파괴되기 쉽다는 것, 또는 남성의 생명주기가 여성의 경우보다 빠르게 마무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느린 신진대사는 여성이 장수하는 또 하나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이다.
두 개의 X 염색체의 비밀
염색체의 차이 또한 남성과 여성의 사망률 차이에 영향을 미친다. 성을 결정하는 염색체의 이상은 영양실조, 혈우병 등을 비롯해 수많은 유전성 질병을 유발한다. 여성은 2개의 X 염색체가 있기 때문에 X 염색체 하나에 이상이 있다고 해도 정상적인 다른 하나의 X 염색체가 질병의 발병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는 다르다. 남성은 X 염색체 하나와 Y 염색체 하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 염색체 가운데 한 쪽에 결함이 있을 경우에 대안이 없다. 1985년 미국 대학의 연구진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손상된 DNA의 복구를 위해 중대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X 염색체 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만일 이 유전자에 결함이 있는 남성이라면, 세포 분할 시에 발생하는 변이를 복구하는 그의 신체 능력은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변이의 축적은 노화를 촉진시키고 질병을 유발한다.
여자는 2개의 X 염색체 가운데 하나가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두 번째 X 염색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나이가 들어 잃었거나 손상된 첫 번째 X 염색체 상의 유전자들을 두 번째 X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들이 보충하는 것이다. 이런 보충 작용은 인체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인간 게놈의 약 5%가 X 염색체 위에 상주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최근에는 인간의 수명을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유전자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X 염색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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