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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건강

권태기는 우기 처럼 찾아온다.

지루한 장마의 얼굴로 다가와 쨍쨍한 햇살을 거두고 나와, 나의 모든 것들을 음습한 습기로 가두어버린다. 그것은 우뢰와 번개와 굵은 빗발을 가지고 양철지붕 같은 나를 두들기며 짧은 여름밤보다 더욱 짧게 만든다. 

 

나를 휘어 감고 끝없는 방황의 마당을 떠돌게 하는 이 질긴 끈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가장 든든하고 넓게 보이던 그이의 어깨조차 왜소하고 연약해 보이며, 사랑스러워 보기에도 아깝기만 하던 아이도 영원히 내가 소유하며 같이할 수없어 허무하고, 그 누구도 나를 깊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욕망의 풀잎이 시들해진다. 

 

그이는 나이만큼, 세월만큼, 땀 흘린 만큼 착실하게 성 장하고 있으며 아이는 말을 배우고 재롱을 배우며 자기 빛깔을 더욱 확실하게 칠해가곤 있다. 나는 무엇인가.

시간이 어디에 있는가?  찾아볼 틈도 없이 빨래하고  청소하고 우유를 먹이면서 세월이 갔고 주름은 질게 흔들리며 피부에 파고들었다. 어느 날 아침 나의 생활은 일시에 멈추고 말았다. 재물도 사람 죽으면 필요 없는 것이고 말짱 헛거라는 판단이 먼저 왔다. 때로는 많이들 즐거워하고 행복 해 하더라도 다 순간이라는 것. 영원히 인간이 소유할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 우리가 살 만한 아파트를 마련하고, 중년의 얼굴로 남편은 자신을 정돈해 갔으며 아이는 누구의 부축도 없이 뛰어놀고 정확히 집으로 돌아왔다.

 

 

권태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허무였다. 이제까지 가정의 속속들이 내밀었던 나의 땀내 나는 손마디를 거두어들이고 내 자리로 돌아와 만난 것은 보조기능(?)을 완수하고 아니면 지원 단체나 무슨 행사의 막강한 후원자로 자리했다가 축제가 끝나자 나는 나의 이름으로 돌아온 것일까? 할 일이 없고 하고 싶은 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들도 갑자기 의미가 없어진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내 행위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지당한 사고가 아니던가. 여고 동기를 만나도 아롱이는 옛 시절의 재잘거림을 다시 나눌 수 없고, 무슨 보석으로 치장했음을 자랑하는 시간에도 나는 부끄러움이나 시기심도 갖질 못했다.

 

 다이아의 황홀도 수 억원이 나가는 저택도 누구누구 남편의 출세도 모두 다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앞섰다. 부딪히는 일마다 해봤자 그게 그거라는, 그래서 뜨거운 열정을 가지 고 덤벼볼 만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미궁 속에서 흐느적거렸다. 

 


그것은 소망과 의욕의 단절이었고 생활의 오랏줄을 놓아버리는 절망의 낙하였다. 무엇인지를 몰랐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과 아이들의 눈빛 하나에도 마음 뜨겁던 나를, 잃어버린 까닭을 헤아려도 쉽게 찾을 길이 없었다. 제멋대로 얽혀버린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혼돈과 무질서와 식어버린 사랑의 잿더미. 과연 그 누가 여기에 작은 불씨 하나를 심어줄 수 있으랴. 포장이 걷힌 내 젊은 생의 무대 한가운데로 찬란한 조명을 다시 켜줄 수 있으랴. 박수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무대의 저쪽에서 홀로 암울한 어둠에 묻힌 채 눈감고 사는 나. 과연 나를 어찌할 것인가. 

 

무엇으로 나를 일으켜 세워 아이의 천진한 웃음과 솜털처럼 포근한 남편의 팔을 베고 누워 잠들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나로 하여 밀린 빨래와 닦아야 할 집안 구석구석과 아이의 숙제와 남편의 뒷바라지에 온통 함몰시킬 수 있다면, 그리하여 작은 티스푼 하나의 행복 속에 즐거워할 수 있다면‥‥‥

나를 찾고 있었다

대낮에도 마음의 촛불을 켜고 내가 걸어야 할 미지의 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때 나를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 있었다. ‘무엇인가 일을 해야지. 계모임 같은 게 아니라 백화점이나 쑥탕이나 이름난 미용실을 찾아다니는 그런 일이 아니라, 남편과 아이가 좋아하는 동태찌개 하나를 정성 들여 끓이고 손수커튼도 만들어 달아 보고 글씨도 써보고 미처 못 읽었던 책도 꺼내보고‥‥,

그랬다. 나는 아침 이면 일어나 글씨는 한 자도 안 쓰면서 먹을 갈았고 모두 나간 텅 빈 방에서 온종일 먹을 갈았다. 양쪽 손을 번갈아가며 팔목이 시리도록 먹을 갈았다. 더는 검어질 수 없도록, 가장 깊은 먹빛이라 여겨질 때까지, 진한 묵향이 온방을 적셔버릴 때까지, 그리고 붓을 잡았다. 단 한 자를 쓰기 위하여 호흡이 정지되었고 숨소리도 없는 단절 속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생활의 소생을 만났다. 그리하여 몇 주일을 계속하여 먹물을 만들었고 한 자씩 차례차례 배우기 시작했다. 

 

남편의 말 한마디로 잠자던 내 의식을 깨우고 배우며 사랑하는 걸음마를 내디뎠다. 권태는 우기처럼 다가온다. 우기가지 나면 우리들의 창엔 햇살이 뜨겁다. 습기에 갇혀 숨 쉬며 죽어있을 때 나는 우리 가정의 축제는 끝나지 않았음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 자체가 축제의 행사하나임을 알았다. 이젠 권태기가 닥쳐와도 습기에 마음 젖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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