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영국의 플레밍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본격적인 항생제 사용은 1940년대에 들어서였다. 항생제 개발의 길은 무한히 열려 있었고, 실제로 20세기 의학의 손꼽는 성과였었다. 세균의 세포막 형성을 저지하여 살균하는 기능을 하는 항생제는 감염을 방지함으로써 사람의 수명을 적어도 10년은 연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항생제 오남용 위험수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전주곡인가
100%의 치료 효과를 보인 초기의 페니실린을 봐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현대의 모든 의약품에 가해진 금기 · 주의사항. 사용이 빈번해진 페니실린 역시 그러한 꼬리표를 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점차 페니실린의 효능은 완벽하다고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기까지는 미생물 발견 100년 만에, 본격적인 항생제 사용 50년 만의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항생제에 대한 세균 내성률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 항생제내성이란 세균 스스로가 항생제에 대항해 생존능력을 갖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수준까지 항생제 오남용이 잦아지고, 그것의 내성률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항생제는 수술환자 등 2차적인 세균감염이 우려되는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투여되는 약물이었다. 그러나 항생제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짧은 역사에 비해 너무나 컸던 탓일까 환자, 약사, 의사의 구분 없이 항생제 사용의 도를 넘어섰다. 항생제 치료가 전혀 필요 없는 일반 감기 환자들까지, 심지어 모든 약물 투여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유 · 소아 환자에게도 남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항생제 오남용, 그 원인은
모든 질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항생제. 그러나 이제는 왜 문제시되고 있는가. 다음의 사례들은 항생제 오남용이 불러온 무서운 결과들을 보여준다.
사례 1 : J군은 40대의 부모님으로부터 출생한 늦둥이 외동아들이다. 그런데 나면서부터 식도 기형임이 확인되어 한 의료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식도를 연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식도에 천공이 발견되는 등 수술의 정확성에 의심이 가는 가운데, 오히려 포도상구균이라고 하는 악성 원내 세균에 감염되었다.
포도상구균은 병원 내에서만 기생하는 세균으로서 연쇄상구균이라고 하는 또 다른 병원균과 함께 웬만한 항생제에는 내성이 생겨 3세대 항생제 정도는 돼야 치유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J군은 올해로 만 4세가 되는 유아인데 항생제과잉투여로 인한 부작용, 즉 반코마이신이라고 하는 강도 높은 항생제로 인해 청각을 잃게 되었다.
출생하면서부터 겪은 신체적 기형, 그리고 신체적 기형을 치료하려다가 설상가상 신체적 장애까지 초래한 것이다. 전문가는 "반코마이신과 같은 강도 높은 항생제뿐만 아니라 모든 항생제는 사용상에 따르는 부작용이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 내지는 전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정량을 적정기간 동안 투여함은 물론이고, 투여 기간 내내 환자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이상 발생 시 항생제 투여를 중단해야 하는 것이 상식 적이다. 그러나 J군의 경우에는, 치료기관의 무관심과 의료지식 이 희박하 보호자의 심리를 이용해 비싼 항생제를 부적절하게 과다 투여하는 행위에 희생자가 된 것이다.
항생제를 사용할 때는 세균감수성 검사에 따른 단계적 투여순서(1차-2차-3차)가 있다. 강도가 약한 약, 값이 싼 약, 그러면서 효과가 좋은 약을 우선적으로 써야 하는 약물투여의 기본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본원칙이 무시되고,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강력한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쓰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강도가 높은 만큼 부작용을 수반할 가능성도 많다.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검사가 세균감수성 검사인데, 이 검사단계는 현실적으로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기 어렵다. 검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병원은 종합병원급이다. 거기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의, 약사의 경험적 선택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강도가 약한 항생제부터 단계적으로 환자에게 투여해 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다.
사례 2 : P 씨는 겨울 넘어져서 입은 골절상을 치료하기 위해 정형외과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염증치료 및 근육 완하제를 주사약으로 14일 간, 구강약으로 42일 간 투여하였다. 그런데 P 씨는 약물 과다 투여로 인한 간독성질환을 앓게 되었다. 황달과 소화 장애가 생긴 것이다.
전문기관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환자에게 투여된 염증 완하제인 약물들은 성인 1일 투여량을 초과하였으며 일부 약물은 간과 신장에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것이었다. P 씨는 내과에 협진을 받은 결과 독성 간염으로 진단되었다. 이후 내과에서는 환자의 열이 상승하자 다른 약물, 즉 항생제인 켄타마이신과 세파졸린이 포함된 아세트아미노펜을 투여하였다.
그런데 이 약물은 이미 독성 간염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간을 더욱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안타깝게도 P 씨는 간단한 골절상으로 입원했다가 결국 입원 세 달 만에 독성 간염으로 사망하였다.
위에서 본 사례들은 항생제 사용의 기본원칙을 무시했거나 과잉처방한 경우다. 이 밖에도 항생제 오남용의 원인은 많다. 가장 먼저 꼽는 것은, 항생제에 대한 특별한 처방 없이도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외국의 경우에는 전문의사의 처방 없이는 절대로 항생제를 판매하거나 환자에게 투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약국에만 가도 아무런 제재 없이 항생제를 구할 수 있다.
새로운 변종세균들이 속속 등장해 의료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주로 약국을 찾는 환자는 스스로 치료를 하겠다는 과욕으로 무분별하게 항생제를 사서 먹게 되는 것이다. 항생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이만큼 잘못돼 있다. 항생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자칫하면 질병을 만성화시킬 뿐 아니라, 세균의 내성까지 높여 영구적으로 치료 불가능한 상태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머지않아 등장해 난치균, 난치병으로 커다란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현행의 문제점을 막는 방법은 일단 의 · 약사의 앙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환자들은 전문가들의 양심적인 처방을 믿어야만 한다.
조급증, 일명 빨리빨리 증후군에 길들여진 환자들이 있다. 남이 아픈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있다 어려서부터 개근상을 받아야만 하고, 직장에도 환자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서는 안 되게끔 하는 삐뚤어진 사회적 현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 환자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은 필요 없는 것이고, 성급한 환자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이다.
하루아침에 병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듯이 치료 역시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님을 인정할 때다. 그렇다고 환자만이 항생제 오남용의 원인제공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항생제일수록 가격이 비싸고, 좋은 약을 쓰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환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약국과 병원에서 과다투여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의 반발도 줄이고 적지 않은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가축사료에 첨가된 항생제, 각종 소독약에 첨가된 항생제 성분 등 우리의 일상 속에는 보이지 않는 항생제도 많이 있다. 한때 양식장에서 생산된 어패류, 도축장을 나온 육류 그리고 농산물들의 검역 과정에서 빚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축에는 치료, 예방, 사료첨가의 3가지 목적으로 항생제가 사용된다. 항생제가 투여된 동물은 내성균을 배설하게 되고 이는 자연계에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사료에 첨가되는 항생제의 종류를 사람의 감염치료에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내성균이 퍼지는 것은 비단 가축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양어장, 과수원 등 모두 비슷하다. 그래서 시판하기 전 일정기간은 항생제 투여를 금하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까다롭게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항생제 내성화 갈수록 태산
항생제 오남용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직간접적으로 인체에 해악을 주기 때문이다 신체장애의 요인이 된다든지, 종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항생제 내성화로 인한 피해는 단 한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세균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전인류가 세균의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더군다나 내성이 강해진 세균이라면 우리들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하다. 항생제 오남용이 초래하는 세균의 내성화는 현재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뇌막염 환자인 H 씨는 페니실린을 투여했지만, 강한 내성으로 결국 식물인간이 됨. 간경화증 환자 L 씨는 녹농균에 감염되어 세팔로스포린 항생제를 투여했지만, 강한 내성으로 20일 만에 패혈증으로 사망. 폐렴 환자 Y 씨의 몸에서 항생제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갖는 장구균 검출 등등. 지금도 내성이 강해진 세균들이 사람들의 몸속에서 활동 중이다.
내성을 가진 세균을 죽이기 위해 더욱 강력한 항생제를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항생제 개발 속도가 세균의 내성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 의학계의 중론이다. 항생제 내성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는 통계도 있다.
한편 도시화, 과밀집화로 인해 인체의 자연면역력은 점점 저하되고 있어 항생제 내성화 문제는 갈수록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또한 과거 푸른곰팡이에서 항생물질을 추출했을 때와 여러모로 상황이 열악해졌다. 무질서한 항생제 개발로 인해 항생물질을 추출할 수 있는 자연물질의 고갈, 이후 화학적 합성물질을 많이 이용했는데 이것 역시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화합물까지 거의 다 찾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60,70년대에 발견되었으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아서 개발이 안 된 항생제 중에서 구조나 작용기전이 기존의 항생제와 다른 것. 교차내성이 적을 것으로 추정되는 항생제들을 재평가하고 개발 가능성을 새롭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항생제에 의해 전혀 박멸되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했다고 보고되었으며, 영국에서는 항생제를 먹고사는 세균이 등장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가까운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MRSA(메치 실린 내성 황색 포도상구균) 퇴치 항생제로 사용 중인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새로운 변종이 발견되었다 MRSA는 병원에서는 상당한 골칫거리인데 만약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보이게 되고 이와 같이 내성화가 최고조에 달한 세균들이 국내로 들어올 경우 피해자는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급속한 내성화, 막을 방법은 없는가
항생제의 내성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항생제사용을 억제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전 국민의 획기적인 의식전환이 있기 전까지는 항생제 사용 억제조차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식 설문조사에 보면, 몸이 아플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약국이 50% 가까이 되며, 병원은 40% 점도다. 다시 말해 약국에서 정확한 검사 없이 항생제를 오남용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10명 중 5명의 환자는 이미 약국에서 내성을 키워가지고 병원을 찾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병원에서는 불가피하게 강도 높은 항생제를 쓰게 된다. 한편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문가와 상담한 결과가 아닌, 대중전파매체나 미디어 매체를 통해 의약품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는 사람이 무려 7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봐서, 의약품에 대한 선전광고가 과장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에 대해 "항생제 사용 억제에 대한 제도적이 뒷받침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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