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건강

육회 vs햄버거

햄버거 하면 먼저 생각나는 나라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이나 독일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햄버거의 기원은 미국도, 그렇다고 독일의 함부르크도 아니다. 그 뿌리는 아시아의 대초원에서 살았던 유목민인 타타르족(族)이다. 그들은 날고기를 말의 안장 밑에 깔고 다님으로써 육질을 연하게 한 다음 여기에 소금, 후추, 양파 즙으로 조미(調味)하여 날로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햄버거의 원조인 ‘타타르 스테이크’인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한국사람만이 먹는 육회(肉膾)와 그 요리법이 똑같았다는 점이다.

육회 vs햄버거

 영화로도 상영된 바 있는 ‘미스터 빈’이라는 영국의 TV용 코메디물 중 한 토막.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 ‘미스터 빈’이 레스토랑에 들렀다. 자신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이름의 스테이크 하나를 주문한다. 그러나 잠시 후에 나온 이 요리는 전혀 익히지 않은 날고기였다. ‘미스터 빈’은 이 스테이크를 한 번 맛을 본 후 도저히 먹을 수 없음을 깨닫고 종업원들 몰래 식탁의 이곳저곳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종업원의 뒷주머니에까지 버린다. 그러나 식당 주인은 그렇게 버려진 음식이 마치 자신들의 실수인양 잘못 알고 미스터 빈에게 똑같은 스테이크를 다시 가져다주는데….

미스터 빈을 곤혹스럽게 만든 음식이 바로 ‘타타르 스테이크’.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육회다. 1976년 서(西) 베를린의 국제 발효심포지엄에서 이 타타르 스테이크와 한국의 육회 요리가 비교됐는데, 그 조리법은 물론, 계란의 노른자위를 얹어 먹는 것까지 똑같았다고 고증되었다. 타타르의 요리가 몽고와 고려를 통해 동쪽으로 흘러 들어가 육회가 되었고, 몽고의 유럽침공 때 서쪽으로 흘러간 것이 타타르 스테이크→함부르크 스테이크→햄버거가 된 것이다.
곧 육회와 햄버거는 조상이 같은 사촌음식임을 알 수 있다.

독특한 우리만의 음식 ‘육회(肉膾)’

회는 육회(肉膾)와 어회(魚膾)로 나눈다. 이중 기름기 없는 쇠고기의 살코기를 얇게 저며 양념에 무친 생회(生膾)인 육회는 동양 3국 중, 특히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지금 중국사람은 회를 먹지 않는다. 말린 고기일지라도 반드시 익혀 먹는다. 우리나라 우리나라 사람이 회를 먹는 것을 보고 웃는다’는 기록이 나와있는데,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별 저항감 없이 회를 먹었으나 중국에서는 먹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나라 초기의 문헌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 의하면 양육회방(羊肉膾方)이라 하여 ‘양의 간이나 처녑을 날로 가늘게 썰어 강사(薑絲)를 넣고 초(醋)에 담가서 먹는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중국에서도 원나라 초기까지는 회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회를 먹게 된 시초는 고려말에 몽고인을 통해서라고 추측된다.

한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기록된 육회 만드는 법을 보면 “기름기 없는 연한 쇠고기의 살을 얇게 저며 물에 담가 핏기를 빼고 가늘게 채 썬다. 파와 마늘을 다져 후춧가루·깨소금·기름·꿀 등을 섞어 잘 주물러 재고 잣가루를 많이 섞는다. 초고추장은 후추나 꿀을 섞어 식성대로 만든다”라고 한다. 


육회는 생것으로 먹기 때문에 기름기가 없고 질이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 다소 속이 안 좋을 때 육회를 먹고 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배와 같이 먹으면 체하지 않는다. 배는 굵게 채를 썰어서 고기 밑에 깔아도 좋고, 배 한 겹, 고기 한 겹 하는 순서로 놓아도 좋다. 육회로 쓰이는 쇠고기의 부위는 앞다리와 뒷다리 쪽에 둘러싸여 있는 ‘아롱사태’와 뒷다리에서 앞쪽으로 퍼져있는 근육으로 지방질이 적은 ‘설도’라고 하는 부위다.

 

미국의 문화점령 척후병 ‘햄버거’

청바지 입고, 왼손엔 콜라, 오른손엔 햄버거. 소위 미국문화의 상징이라 할만한 것들이다. 미국 문화가 침투하기 전에 반드시 앞서 들어가는 두 가지 물건이 있다고 한다. 바로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햄버거다. 그러나 맥도널드 햄버거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성공보다는 실패의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그 이유로는 첫째, 한국 사람의 식성은 국이나 찌개와 같이 물기 있는 음식이 없으면 못 먹는 습성(濕性)인데, 햄버거는 건성(乾性)이다. 둘째, 한국 사람들은 남들 보는 앞에서 음식 먹기를 꺼리는데 햄버거는 개방된 데서 먹는 음식이다. 셋째, 한국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음식을 먹는데 햄버거는 걷거나 움직이면서, 또 일하면서 먹는 음식이다.

햄버거가 미국에서 처음 팔리기 시작한 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에서였는데, 현재는 연간 600억 개의 햄버거가 미국사람들에 의해 사라진다고 하니 놀랍기만 할 뿐이다. 단지 육회를 익혀 먹고 날로 먹고의 차이밖에 없는데, 이렇게 천문학적 간격이 벌어지고 있음에 대해 그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무상할 따름이다.

 

Copyright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