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에 이어 중국 대륙을 두 번째로 통일한 한(漢)은 약 400여 년 동안 번영하면서 화려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래서 중국 글을 한문(漢文)이라 하고 중국 의학을 한의학(漢醫學)이라 불러왔던 것이다.
한동안 동양문화권에서 행해지던 전통의학을 통틀어 ‘동양의학’이라 부르는가 싶더니 각국의 민족주의적 의식이 고조되면서 중국에서는 자신들의 전통의학을 중국의학이라 부르게 되었고, 몽골에서는 몽의(蒙醫), 월남에서는 월의(越醫), 일본에서는 한방(漢方)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북한에서는 동의(東醫) 혹은 고려의학(高麗醫學)이라고 하는데 남한에서는 한의(韓醫) 또는 한방(韓方)이라 부르고 있다.
한방으로 갈까, 양방으로 갈까
한의학을 한방이라 부르다 보니 서양의학을 상대적으로 양방(洋方)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서양(西洋)의 서(西) 자를 떼버리고 그냥 양(洋) 자만 쓰면서 양복·양옥·양식·양놈·양색시라 한다.
어쨌든 상대적인 개념으로 동양의학에 대해서는 서양의학, 동의(東醫)에 대해서는 서의(西醫), 한방에 대해서는 양방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요즘 환자들 중에는 “이런 경우 한방으로 가는게 좋아요, 아니면 양방으로 가는 게 좋아요?”라는 질문을 해오는 사람이 많다.
인류 역사는 선택의 자유와 선택의 고민을 안고 시작되었다. 인간은 선택 속에서 태어나며 선택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라나고 수천수만의 선택을 하면서 이 생(生)을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가 택한 무수한 선택의 결과가 자신의 건강과 행복과 수명을 결정짓는다.
이 수술을 받으면 50%는 완쾌될 확률이 있는 반면, 50%는 죽을 수도
올바른 선택은 올바른 판단에서 오며 역시 올바른 판단은 올바른 지식에서 온다. 아울러 올바른 지식은 올바른 정보에서 온다. 올바른 정보가 없으면 지식을 얻을 수 없으며 올바른 지식이 없으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고 올바른 판단이 없으면 바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결국 올바른 선택을 못하면 자기가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크든 작든 선택 과정에는 늘 깊은 생각과 망설임, 고민이 따른다. 짜장면을 먹을까, 볶음밥을 먹을까 하는 망설임은 대수롭지 않은 선택이다. 여행을 이탈리아로 갈까, 뉴질랜드로 갈까 하는 선택은 행복한 고민일 수 있다. 그러나 자기의 건강문제를 놓고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하는 선택의 과정은 심각한 고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이 수술을 받으면 50%는 완쾌될 확률이 있는 반면, 50%는 죽을 수도 있는데 이 수술을 받아 보겠어 안 받아보겠어?” 하고 선택을 종용받는다면 이는 피를 말리는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료제도가 이원화돼 있어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즉 한방과 양방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공존하고 있다. 둘 다 의학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 서로 융화되지 않은 채 평행선을 그으면서 존재한다. 같이 있으면서 따로 있는 것이다. 한집에 살면서 각방을 쓰는 부부와 다를 게 없다. 의사와 한의사를 합친 의사수,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을 합친 의과대학 수, 그리고 의대교수 수를 인구 비례로 따져 보면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많은 나라도 드물다.
올바른 선택은 올바른 정보에서 나온다
요사이 우리나라에는 옛날과 같은 소위 무의촌은 거의 없으며 전국 대부분의 마을마다 병원이나 의원, 한의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이 길거리에서 고개만 돌리면 눈에 띄는 것이 병의원이요 한의원이며 집안 식구 중에서 또는 친한 친구 중에서 혹은 이웃 주민들 가운데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이 의사나 한의사인데도 ‘한방으로 갈까 양방으로 갈까’ 하는 질문을 가슴에 안고 이리저리 답변을 찾아 헤매고 있다.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양방과 한방에 대한 공부
“병원에서 처방한 여러 가지 약을 지금 먹고 있는데 여기에 이러한 한약을 같이 먹는다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까요?” 라든가 “이것은 간에 좋다는 양약이고 이것도 간에 좋다는 한약인데 둘 다 같이 먹어도 괜찮은가요?”라든가 “어떤 의사는 나보고 침을 맞으라고 하고 또 다른 의사는 침을 맞지 말라고 하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라고 하는 식의 흔한 질문에 확실하고 자신 있는 대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게 환자들의 고민이다.
우리나라 의학교육 제도는 동서의학 중 하나만을 가르치고 졸업 후에도 하나만을 이용하도록 돼 있다. 전공하지 않은 다른 반쪽의 의학은 모르고 있는 형국이다. 모르면서 어떻게 그것을 먹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모르면서 어떻게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방으로 갈까 양방으로 갈까 하는 질문에 대한 자신 있는 대답은 오직 두 의학을 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의사에게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의사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게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선택의 과제다.
따라서 일반국민이나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양방과 한방에 대한 공부를 직접 하거나 아니면 나를 대신 선택해 줄 수 있는 의사를 찾아내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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