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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상식

아이의 두뇌는 누구를 닮을까?

얼굴이 예쁜 여배우가 지적인 극작가에게 청혼을 하며 “우리가 결혼하면 당신의 머리와 저의 미모를 닮은 멋진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하자, 그 극작가는 “당신의 머리와 저의 외모를 닮은 아이가 나오면 어떻게 하죠!”라고 응수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듯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우의 일화이다. 

머리 좋은 자식 얻으려면 아내를 잘 만나야

아이는 누구를 닮을까 혹은 닮았을까? 우리는 농담으로 아이가 잘하는 것은 나를 닮았고 못하는 것은 배우자를 닮았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가 성적이 좋지 못한 경우는 누굴 닮아서 그런가 하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물론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 그럼, 부모 가운데 누구를 닮을까?
아이는 부모 각각에게서 반쪽씩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부모를 반씩 닮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부분이 아버지를 닮고 어떤 부분이 어머니를 닮았을까? 유전학자들은 이점을 밝히기 위해 많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쇼우의 재치 있는 답변 내용은 생각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지능을 담당하는 두뇌 부분의 발달에 우세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어미의 유전자였다. 한편 아빠 쥐의 유전자는 정서적 특성을 지배하는 두뇌의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능과 관련하여, 아이들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많이 닮는다는 사실은 상식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통계도 다수 있다. 이런 통계에 따르면, 아들과 딸은 모두 어머니를 닮을 확률이 더 높지만 딸과 아들을 놓고 보면 딸보다는 아들이 어머니를 닮는 확률이 좀 더 높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를 닮고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는 속설이 퍼지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엄마의 지성과 아빠의 감성

 영국 한 대학에서는 어머니의 유전자는 자식의 지적 능력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아버지의 유전자는 감성적 능력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그들은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서, 어머니의 유전자는 사고를 지배하는 두뇌의 영역의 발달에 공헌하는 반면 아버지의 유전자는 감성과 관련된 대뇌 변연계의 발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찾았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들을 고려한다면, 머리 좋은 자식을 얻으려고 노벨상 수상자들의 정자 은행을 기웃거리는 여성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지적으로 우수한 남성보다는 차라리 편안한 남성을 남편으로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반대로, 머리 좋은 자식은 원하는 남성은 지성적인 여성을 아내로 선택해야 목적을 달성할 확률이 높아진다. 

지능과 외모를 비롯하여 부모의 생물학적 특성이 자손에게 전달되는 것을 유전이라고 한다. 이런 유전을 담당하는 생물학적 인자를 유전자(gene)라고 부른다. 멘델이 유전 법칙을 발견한 것은  140여 년 전인 1866년이지만, 지금처럼 유전자의 실체가 DNA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을 1944년의 일이다. 이것은 미국의 세균학자 에이브리(O. T. Avery)의 업적이다. 
유전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DNA는 디옥시리보 핵산(deoxyribonucleic acid)의 약자이다. DNA는 모든 세포 속에 들어 있어서 한 개체가 탄생해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생존에 필요한 반응을 끊임없이 지시한다. 많은 사람들은 DNA가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유전물질로 전달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있는 생물체에서 계속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잊고 있다.
 
DNA는 종(種)의 특성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지만,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도 미묘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느 누구의 DNA도 지구상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의 DNA와 같을 수는 없다. 또한 인간을 비롯해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의 DNA는 쌍을 이루고 있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각기 한 짝씩의 DNA를 물려받은 한 쌍의 DNA를 갖는다. DNA의 물리적 성분은 ‘아데닌, 티민, 구아닌, 시토신’ 4종류의 염기와 인, 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뉴클레인에서 DNA로

 

DNA는 1869년 스위스의 젊은 과학자 미셔(F. Miescher)가 처음 발견하였다. 그는 고름의 세포핵 속에서 그때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성질의 성분을 분리하고, 그것이 핵에 많이 있다는 데 착안해 뉴클레인(nuclein)이라고 명명했다. 뉴클레인은 정확히 말하면, DNA라기보다는 DNA의 주성분이 되는 물질이었다. 미셔는 뉴클레인 연구에 생애를 바쳤는데, 뉴클레인 속에 인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뉴클레인이 유전의 기초가 되는 물질이며 생명 현상의 기본 물질이라는 개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뉴클레인의 물리적 기초는 미셔의 발견이 있은 지 11년 후인 1880년 독일의 코셀(A. Kossel)이 발견하였다.  그 후 10년 여의 연구 끝에 뉴클레인 속에 아데닌, 구아닌, 티민, 우리실, 시토신 등 5종류의 유기염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고, 1899년 알트만(R. Altmann)은 이들 유기염기와 인산을 포함하는 물질을 핵산(nucleic acid)이라고 명명할 것을 제창했다.
 
핵산이 유기염기와 인산 이외에 당을 포함한다는 사실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밝혀졌다. 러시아 태생의 미국 화학자 레빈(P. A. T. Levene)은 효모의 핵산에 탄소 원자 5개를 포함하는 당(D-ribose)이 포함되고, 이 당이 인산과 염기에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리보오스를 포함하는 핵산은 오늘날 RNA라고 부른다. RNA 이외에 또 한 종류의 핵산, 즉 DNA가 생체 내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데는 또다시 20년이 걸렸다. 1929년 레빈 등은 동물의 흉선에서 추출한 핵산이 D-리보오스와 다른 디옥시-D-리보오스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디옥시리보오스를 포함한 핵산이 바로 DNA이다. 

 

메틸화 또는 게놈 각인

유전자는 쌍으로 존재한다. 자식의 유전자는 한 짝은 어머니로부터, 다른 한 짝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한 쌍이 된다. 부모로부터 한 짝 싹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한 쌍의 자식 유전자가 형성될 때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메틸화(methylation) 또는 각인(imprinting)이라고 하는 현상이다. 남자 아이의 유전자는 물론 여자 아이의 유전자도 하나의 X 염색체 상의 유전 정보만을 이용한다. 그런데 여아는 똑같은 X 염색체가 2개이다. 똑같은 두 개의 정보를 모두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생체는 한쪽 X 염색체를 화학적 코팅에 의해 침묵케 만든다. 이것이 메틸화이다.
 
많은 염색체들의 일부분은 매우 초기에, 즉 정자와 난자가 형성되는 동안에 메틸화가 이루어진다. 메틸화는 태아의 정상적인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태아의 정상 발달에는 부모 양쪽의 각인 유전자 버전이 모두 필요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한 쌍의 유전자는 똑같이 활성을 띠지만, 각인 유전자는 부모 가운데 어느 쪽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따라 활성과 비활성이 결정된다. 어떤 각인 유전자는 어머니로부터 비롯되었을 때만 작용한다. 동일한 유전자가 정자를 통해 유전되었을 때는 침묵한다. 반대로, 어떤 유전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경우에만 활성을 띤다. 각인 유전자 가운데 어떤 것은 성장 기간 중 아주 짧은 시기 동안만 침묵을 지키고, 또 어떤 것은 특정 조직에서만 침묵을 지킨다. 이런 각인 유전자의 상실 또는 이상기능은 유전성 비만에서부터 어린이 암에 이르기까지 질병의 원인으로도 추측된다.

 

 
이런 게놈 각인은 1884년 쥐 실험을 통해 수라니 등이 처음 입증하였지만, 유전자가 그 원천이 부모 가운데 어느 쪽에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은 거의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유전학자들이 관심을 가졌고, 1990년 경에는 쥐와 사람에게서 각인 유전자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이것은 인슐린과 같은 성장 요인(growth factor) II라고 불리는 성장 호르몬이었다. 그 후 15개의 각인 유전자가 쥐에게서 확인되었다. 과학자들은 각인 유전자의 수를 수 백개 또는 그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놈 각인의 발견은, 다른 많은 과학적 발견들처럼 우연적이었다. 1984년 수라니와 케임브리지의 연구진은 포유동물이 다른 동물들처럼 단성생식을 하지 않고 유성생식을 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한 실험으로 처녀생식 배와 동정생식 배를 만들었다. 이들은 원래 실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 대신 게놈 각인 현상의 존재를 확인했다. 
수라니는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경우에만 활성이 되는 각인 유전자는 배(胚)의 초기 발달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반면 아버지로부터 유전된 각인 유전자는 나중에 태반으로 자라는 조직의 정상적인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수라니와 케번은 각인 유전자가  배의 초기 생존에 그렇게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나중에 배가 발달한 이후에도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측했고, 실험을 통해 입증하였다. 한쪽 부모의 유전자만을 두 배로 가지고 있는 배는 오래 생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험이 매우 어려웠지만, 적어도 절반이 정상적인 배 세포이면 거의 임신 기간 동안 대리모 쥐의 자궁 속에서 생존했기 때문에 실험이 가능했다. 


실험 결과는 매우 자극적이었다. 동정생식 배 또는 처녀생식 배를 정상적인 배와 혼합시켜 만든 키메라들은 쥐의 임신 기간인 약 3주 동안 살아남았다. 하지만 어미 유전자를 더 가지고 있는 배에서 자란 태아 쥐는 머리와 두뇌가 크고 몸집이 작았다. 반대로 아비 유전자를 추가로 가지고 있는 배에서 자란 태아 쥐는 큰 몸집에 작은 뇌를 가지고 있었다. 


이 실험은 각인 유전자가 배의 초기 단계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쥐의 발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예측을 확인시켜 주었다. 더욱이 어미로부터 비롯되었을 때에만 활성을 띠는 유전자는 보다 큰 뇌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이고, 아비로부터 유전되었을 때만 활성을 띠는 유전자는 보다 큰 몸집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각인시킴에 따른 유전자 균형

초기 단계에는 어떠한 세포라도 나중에 두뇌로 발달할 배의 영역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배가 성숙해서 완전히 발달한 쥐가 될 정도가 되면, 부계 유전자만을 운반하는 세포는 정서를 담당하는 대뇌 영역인 변연계에 두루 펴져서 쌓인다. 대뇌변연계는 성 행동, 먹이 섭취, 공격포는 과 같이 생존에 필수적인 행동을 지배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사고를 담당하는 두뇌 부분인 대뇌 피질에서는 부계 유전 세포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정상 세포와 모계 세포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배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모계 유전자만을 포함하는 세포는 정서적 두뇌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사고를 담당하는 두뇌 영역인 대뇌 피질에는 모계 유전자만을 포함하는 세포들이 축적되었다. 

 

정상적인 두뇌를 형성하는 데는 수백 또는 수천 개의 각인되지 않은 유전자가 필요할 뿐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들의 활동성에 있어서 주의 깊게 꾸며진 균형이 요구된다. 정상적인 쥐와 두뇌의 경우, 그 균형은 한쪽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어떤 유전자를 각인함, 즉 침묵시킴에 의해 달성된다. 여기에 유전자 각인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사이코다윈이즘」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배드코크(Christopher Badcock)sms 케번과 수라니의 발견을 프로이트의 주장에 비교해서 해석한다. 그는 아버지의 유전자는 우리 마음의 무의식적이고,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구성요소인 ‘이드(id)’를 형성하고 어머니의 유전자는 의식적이고, 인지적이고, 억제하는 부분인 ‘에고(ego)’를 형성한다는 것을 케번 등의 실험을 통해서 밝혀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두뇌가 발달하는 동안 어머니의 유전자와 아버지의 유전자는 행동의 제어를 위해 경쟁하고 프로이트의 에고와 이드와 매우 흡사한 서로 갈등하는 두 부분으로 마음이 나누어져 육성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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